우리 동네에 오래된 베트남 쌀 국숫집 하나가 있었다. 포포라는 이름의 가게였는데 간판도 촌스럽고 심지어 건물 2층에 있어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던 곳이다. 이 동네에 꽤 오래 살았지만 포포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새로운 메뉴를 도전하는 것은 좋아해도 새로운 식당을 찾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난 베트남 쌀국수가 먹고 싶을 땐 주로 포메인이나 포베이 같은 프랜차이즈를 찾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친구와 함께 근처에 있던 포포를 발견하고 별 기대감 없이 들어가 보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과 수많은 식물들은 약간 동남아 현지 식당의 느낌과 80년대 빈티지한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메뉴판에는 쌀국수, 월남쌈 등 베트남 음식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기본적인 메뉴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나는 주로 양지와 차돌이 들어간 쌀국수를 먹곤 했다.
포포의 특징 중 하나는 숙주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준다는 것이다. 쌀국수 밑에 숙주를 깔고 숨을 다 죽여도 국수면보다 숙주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나는 국물에 칠리소스와 해선장을 넣는 걸 좋아하는데 포포에 있는 칠리소스가 또 엄청 맛있다. 적당히 달면서도 아주 매콤한 그 소스를 달달한 양파절임에 푹 찍어서 고기 한점, 국수 한 젓가락과 함께 후루룩 털어 넣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아무튼 포포에서의 감격적인 첫 식사 후 나는 쌀국수가 먹고싶을 땐 늘 포포를 찾았다. 포포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나처럼 단골들이 주기적으로 찾는 그런 식당이었다. 한 번은 엄마랑 포포를 갔는데 어떤 손님이 미국에서 포포 생각이 많이 나서 한국에 오자마자 포포에 왔다는 이야길 했었다. 참 우리 엄마도 내가 한번 데려온 후에 포포의 단골이 되었다. 나중에 사장님이 바뀌시긴 했는데 전 사장님이 서비스도 엄청 좋으시고 친절하셔서 친구랑 둘이 가면 꼭 면추가 원하면 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베트남 커피도 공짜로 주셨었다. 주방장님이 외국인인데 아무래도 그분이 맛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거기 육수가 진짜 진하고 깊은 것이 다른 어느 가게의 베트남 쌀국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하루는 옆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포포에 대해 얘기하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쌀 국숫집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이 집의 쌀국수 국물을 한입 먹은 후 감탄사를 연발했다. 마른 체형의 그 친구는 국수와 국물을 남김없이 흡입했고 나와 함께 거의 한 달에 세네 번씩 포포를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가는 사람마다 극찬하는 세계 최고 쌀국수 맛집인데 주중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나는 꼭 맛있는 녀석들에 이 집을 추천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 작년 12월 31일을 기점으로 영업을 마감했다. 너무 슬프고 서운했다. 여태까지 살면서 한 번도 어떤 가게가 사라졌다는 이유로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다시는 그 쌀국수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과 다른 친구들에게 나만 아는 맛집을 소개할 수 없다는 게 속상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거기보다 맛있는 쌀국수집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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